명문대 출신 조계종 스님 아침마당
명문대 출신 이력과 방송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한 조계종 승려가 아이를 둔 아버지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출판 계약으로 얽힌 출판사가 최근 사생활 의혹이 제기된 A스님과 관련해 “저자와 협의에 따라 도서를 절판하고 전속 저자 매니지먼트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A스님은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조계종 입적 후 아이를 낳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보자에 따르면 A스님은 처음에는 대처승으로 결혼을 허용하는 작은 불교 종파에 들어가 같은 종파의 여성과 결혼해 첫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대처승이란 아내나 자식을 두면서 경우에 따라 육식을 하는 승려를 말한다. 한국불교태고종은 대처승을 허용하지만 한국불교조계종은 대처승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계종으로 옮기길 원한 A스님은 아내에게 위장 이혼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내는 ‘양육비와 생활비를 벌겠다’는 말을 믿고 이혼에 합의했고, 조계종으로 옮긴 후에도 A스님은 아내와의 만남을 지속해 둘째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이후 A스님은 ‘위장 이혼’이 아닌 ‘정식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해 현재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성장하고 있다고 제보자는 주장했다.
명문대 입학 1년 만에 출가한 것으로 알려진 A스님은 그간 학업과 수행을 병행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유튜브 채널과 소셜미디어 등을 운영하며 대중과도 활발하게 소통해왔다. 최근에는 한 유명 노래자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대처승 이란?
대처승은 아내나 자식을 두면서 경우에 따라 육식을 하는 승려를 말한다. 대처승은 일본에서 1872년 공식적으로 허용되었고, 일제강점기 일본 불교의 유입으로 수용되었다.
1926년 말 총독부가 사법 개정을 승인하여 승려들에게 대처식육을 승인한 것은 조선 불교를 일본 불교화하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한국 불교는 일본 불교가 유입되기 전까지 승려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육식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독부 정책의 결과로 해방 직전에는 승려 가운데 90%가 대처승이었다고 한다.
대처승 문제는 해방 이후 1954년 5월 20일 대통령 이승만이 유시를 발표하여 대처승은 일본 제국의 잔재이므로 모두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담화문을 계기로 대처승과 비구승 간의 긴 분쟁이 발생했다.대처승과 비구승의 분쟁은 단식, 시위, 할복, 소송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반하여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이 대립과 갈등 자체가 대한민국 불교 성립의 과정이자 역사가 되었다.
결국 대처승을 허용하는 파벌은 한국불교태고종을, 허용하지 않는 파벌은 대한불교조계종을 구성했다. 태고종은 1954년의 이승만 유시로부터 촉발된 사태를 불교계의 법난으로, 조계종은 왜색 척결을 위한 불교계 정화로 인식하여 시각 차이를 드러낸다.이후 대처승은 조계종을 중심으로한 불교정화운동으로 많이 사라져 소수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담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은 대처승 제도에 매우 호의적이라서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며 승려도 결혼하고 육식할 수 있어도 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다만 만해가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아니다. 또한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부친이 대처승이었다. 조정래의 아버지 철운은 대처승을 인정하는 태고종 계열의 선암사 부주지 출신의 진보적 관점을 지닌 승려로, 해방 후 "절 사유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 하자"고 주장했다가 좌익으로 몰려 사형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가수 이선희의 아버지도 대처승이었는데, 이선희 본인은 이것 때문에 어릴 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에는 가정이 있고 삭발하지 않으며 절에도 상주하지 않는 승려가 있어 대한민국의 대처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대처승"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는 않는다.